Friday, October 3, 2008

신용경제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해서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휘청대고 있는 것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에서 시작된 위기 상황이 어찌어찌 넘어가나 했더니, 대형 투자은행들이 쓰러지는 일이 생겨서 또 난리 중.

미국 경제는 다들 말하길 신용경제라고 한다. 말이 좋아서 신용경제지, 끊임없이 빚을 지고 사는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20달러 이상의 지폐를 본 적이 없고, 소매점이 아니고서는 현찰을 받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결제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또는 개인수표로 처리한다. 직불카드라해도 긁는 순간 통장 잔액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 날이나 며칠 뒤에야 최종적으로 처리되니까 시간이 짧을 뿐 빚이 된다. 신용카드나 수표도 마찬가지. 언제 돌리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끊임없이 빚을 조금씩 갖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것도 집 값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거나 떨어져 담보가치가 빚보다 적어져 생긴 것. 그 동안은 어떤 이유에서건 값이 올랐던게다. 실물가치가 어찌됐건간에.

근데 이 금융회사들이 하는 일이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아먹는 게 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 이른바 파생상품.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 봤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간단히는 외환, 외환을 지정된 기일에 (지정된 가격으로) 사고 팔 권리 (선물거래), 주식 선물, 주가 지수, 그리고 남의 빚을 받을 권리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무형의 자산을 거래하고 있다. 물론 시작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예를 들어 환헷지를 통해서 환율변동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이익도 그만큼 줄어들지만. 그런데 이런 시장에서는 필연적으로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참가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 성사가 안될테니.

이런 무형 자산의 시장은 보통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서 장부상으로 고액이 있으면 큰 수익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으므로 금융회사들은 차입금을 늘려서 큰 수익을 도모하게 되었다. 물론 금리가 워낙 낮았으니까 가능했지만, 금융회사 차입금은 다시 다른 금융회사로 또 다른 금융회사로 대출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물은 그대로였지만 장부상으로는 몇 배로 커져버렸다. 돈이 돈을 버는 금융공학의 시대가 된 것.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면 문제는 없을테지만, 세상은 그리 되지 않는다. 어쩌면 꽤나 오래 버틴 것일지도 모른다. 한 군데서 구멍이 나버리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고, 돌아오는 만기채권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돈이, (실제 돈이) 필요했지만 돌아와야 할 돈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버리고 만다. 집 값이 오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부터 연쇄적으로 터지기 시작해서 펀드, 투자은행, 이제는 일반은행이 넘어갈건지를 걱정하고 있는게 현실.

빚을 내서 돈을 쓰는 일에 미국인들은 너무 익숙한 것 같다. 하긴, 통장에 실제 돈이 있으면 상관없지만. 빚으로 살다가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힘들어 지는 것.

돈은 없지만 빚은 아직 없는 입장에선 큰 차이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불경기에 힘든 건 사실 돈 없는 사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