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 2008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키즈에서 때아닌 인문학논쟁이 붙더니 결국은 고전강독까지 하기 시작했다.
철없이 지냈던 대학 새내기 시절, 그저 수업시간에 읽었던, 그리고 조금 관심이 생겨 찾아보았던 논어의 몇 구절이 떠도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된다.

다음은 논어 학이편의 몇 구절. 연결된 구절은 아니지만...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퍼온 해석이 어쩌면 조금은 서툰 해석일지도, 조금은 틀린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그리고 지금 다시 읽을 때마다, 말 뜻은 같으나 느껴지는 것이 다르니 신기한 문장이다.

나만이 아니라 아마도 이 한 사람이 한 말이 수 천 년동안 읽히고 또 읽히면서 사람들에게 때로는 다른, 때로는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감동을 주었으리라.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했지만, 사람들의 삶의 원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여기 누군가에게 읽히며 그대로의 생명력을 과시하듯 뿜어내는 말들인 것을 보면, 그래서 고전은 고전인가보다.

'배우고 익히는 것'과,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는 것'을 같이 늘어 놓을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보다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문제의식. (아마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이러한 배움과 관계에 대한 의식적인 도전이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단지 나에게만 주어진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명쾌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항상 있는 화두이니까.

고전의 향기는 그래서 씹을수록 더욱 퍼져나가는 신기한 약초와도 같은 가 보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서 또 다른 경험을, 생각을 갖고 다시 씹었을 땐 또 다른 맛이 나겠지.

덧... 어줍잖은 후학의 조그만 생각을 덧붙여보자면,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깊이가 없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임을, 때로는 자신의 이익조차도 아닌 무엇을 위한 일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저 남을 상처주는 것 뿐 다른 의미는 없는 일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너무도 많음을 보면서, 아니 어쩌면 나도 다를 바 없음을 인식하면서, 다시 한 번 고전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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